23년 6월 초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도나두를 장악하고 수도인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푸틴의 요리사’ 프리고진.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이 사건은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서며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그가 조만간 제거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죠.
결국 23년 8월 23일 약 두 달 만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프리고진. 이번 글에서는 그가 푸틴의 요리사에서 반역자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현재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프리고진 그는 누구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프리고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6월경에 있었던 무장 반란 사건을 통해서 였을 것 입니다. 1961년에 태어난 프리고진은 어려서는 운동 선수가 되고자 하였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고, 이후 18세에 절도와 강도 등을 저질러 총 7년을 감옥에서 복역하게 됩니다.
1988년 무일푼이었던 그는 가족들과 함께 노점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했고, 이게 잘 되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러시아 주요 지역에 지점을 낼 정도로 장사는 번창했고, 1996년에는 ‘콩코드 케이터링’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모스크바에 고급 레스토랑을 오픈 했으며, 1998년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상 레스토랑인 ‘뉴 아일랜드’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푸틴이 대통령에 오른 후, 2001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뉴 아일랜드’를 찾았을 때 프리고진을 만나게 되고, 이후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도 프리고진의 식당을 찾았으며, 2003년 부터 푸틴의 생일과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도 프리고진이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푸틴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프리고진은 2010년 러시아의 학교, 군대와 급식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위한 식품 공장의 개장식에 푸틴이 직접 방문할 정도로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시리아의 유전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로부터 지키는 대가로 석유 수익과 아프리카에서 채굴권을 받는 등 여러가지 다양한 방면에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2014년 용병기업인 바그너 그룹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악명을 떨치게 됩니다.
그의 기행
2013년에는 인터넷 연구소라는 여론조작 회사를 운영하여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여론 작업에도 개입하였습니다. 이는 추후에 보도자료를 통해 본인이 “우리는 미국 선거에 개입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개입할 것” 라고 밝혀 공공연하게 드러난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세운 용병기업인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을 주축으로 되어 있으며,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러시아 연방군을, 돈바스에선 친러 세력을 돕는 둥 초기부터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이후 여러 내전과 분쟁에도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득을 챙겨왔습니다. 러시아가 정규군으로 참여 시 받을 수 있는 외교적 책임은 용병 부대로서 피하고, 프리고진은 사업적 이득을 취하는 일종의 파트너 관계로 계속해서 힘을 키웠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러-우 전쟁에서도 초기부터 배치된 바그너 그룹은 잔혹한 모습을 보여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잔혹함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바그너 그룹은 인근 마을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하는 등의 여러 전쟁 범죄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동부 슬레다르를 바그너 용병들이 점령했다고 주장하면서 공개적으로 러시아 정규군 비판에 나서게 됩니다.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배치된 전체 러시아군의 병력 중 약 10%를 차지하고 일반 군사조직보다 월등한 장비를 갖추며 사실상 러시아 정규군을 이끌게 되었는데, 러시아 정규군이 이에 대한 지원을 잘 안 해주자 불만을 품게 된 것입니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
그러던 중 2023년 6월 24일 러시아 국방부 등 정규 군사조직과 갈등을 빚던 그는 돌연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연방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의 용병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해 2000명의 용병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면서 ” 우리 젊은이들을 파괴하고 수만 명의 러시아 군인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은 처벌받을 것”이라며 쿠데타가 아닌 정의의 행진이라고 발표하고 총구를 모스크바로 향하고 진격합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이에 즉각 반박하며 반역죄 혐의로 체포 명령을 내리고 프리고진은 계속하여 하루에 약 1,000km를 진격하는 매우 빠른 속도로 모스크바로 향하게 되는데,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던 이 때 모스크바를 코 앞에 두고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중재 아래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망명하는 조건으로 군을 철수하며 쿠데타는 일단락 되게 되었습니다.
벨라루스로의 망명
러시아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를 면책한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암살 위협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푸틴의 리더십과 이미지에 매우 큰 타격을 입었고, 프리고진을 영웅화 하는 사람도 나타난 마당에 다시 국정 장악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수고 조치가 필연적이라고 본 것이지요. 실제로 푸틴은 정적들을 독살, 사고사, 위장 암살 등으로 제거했던 전력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당장 암살하게 될 경우 당시 프리고진의 인기가 높은 상태에서 순교자와 같이 기억될 수 있기에 제거가 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암살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비행기 추락에 의한 사망
누구보다 푸틴을 잘 아는 프리고진이기에 암살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
현지 시작 8월 23일, 개인 전용기로 이동 중 추락하여 동승자 9명 포함 총 10명이 모두 사망했음이 밝혀졌습니다. 확실한 전후 사정이나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상 러시아 정부에 의해 꾸며진 사고 같은 암살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기사 : 프리고진 항공기 추락 사망…”러 국방부가 격추”
한 때 푸틴을 최고의 위기 순간까지 몰아갔던 그 였지만 결국에는 찝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프리고진. 단순한 사고사 일 수도, 아닐수도 있지만 그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푸틴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네요.